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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그룹공부 중 그룹원으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들을 아래와 같이 답변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창세기 그룹봉사를 시작하는 봉사자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의 경우 성경 공부를 처음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묵상하기보다는 성경의 표면적, 언어적인 내용에 연연하는 질문을 많이들 하시는 편입니다. 봉사자로서 그 질문들을 완전히 해소한다기보다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함께 고민하는 식으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묵상 속에 함께 이해해가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창세기 처음 부분인 창조 이야기가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를 담은 설화라는 것을 함께 이해해 가는 과정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창세기 전반에 사람의 이름과 나이가 빈번히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구약에서 이름은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그 존재의 힘을 함의합니다. 나이는 주로 고령의 나이를 통해 그 사람에게 내려진 축복의 크기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의 저자는 성경 등장 인물의 이름과 나이를 언급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그들에게 내려진 축복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특히 그 중에서 반복되는 족보는 태초부터 지금 나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하느님의 축복을 빠짐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기록입니다. 족보를 통해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져오는, 연속된 하느님의 축복의 모습을 우리는 창조 설화와 원죄 이야기를 배경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2.     창조란 무엇입니까? 한처음에 어둠이 심연을 덮은 상태였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지 않나요? 진정한 창조가 맞나요?

-       성경 본문에서 어둠과 심연은 단순히 그 단어의 의미로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혼돈’, ‘부정적인 것’, ‘부재의 상태’, ‘무질서등을 함의합니다. 여기에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빛은 단순히 밝은 빛의 의미를 뛰어넘어 질서’, ‘긍정적인 것’, ‘선함등을 뜻합니다.

-       유대 신화에서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창조가 아니라 무질서 혹은 혼돈의 상태를 질서와 선의 상태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뜻합니다. 우리는 창조 이야기에서 단순히 전능하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 제 종류대로 태어난 만물을 보시기 좋아하시는 하느님, 인간을 당신 닮도록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창조의 핵심입니다.

-       이처럼 창조 이야기에서 세상과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질서와 사랑을 발견하는 우리는 창조 질서라는 용어로써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최소한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으며, 약자에 대한 존중과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신학적이고 영성적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발표하신 환경회칙찬미받으소서가 긴 내용을 할애해 창조설화를 언급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 회칙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성경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저마다 헤아릴 수 없는 존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라고 창조 이야기의 신학적 함의를 거듭 밝히시면서 모든 인간의 삶이 순전한 우연이나 무한한 순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희망 없는 혼돈 속에 떠다니지 않고 있다는 확신은 얼마나 놀라운지요!’라고 감탄하시며 창조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신앙의 빛을 재조명하십니다. 자세한 내용은 찬미받으소서’ 65항부터 75항까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과학/이공계 종사자는 창조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과학과 창세기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창조론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인가요? 공룡은 어디에 갔나요?

-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을 담고 있지 않으며, 창조의 기계적인 과정이나 고고학적 사실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창조론을 서술하는 저자의 지식 안에서 세상을 당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창조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로써 그 내용 자체는 저자의 상상이나 당시에 구전되어 내려오던 설화를 본따 상징적인 언어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이 발전하기 이전의 시대에 작성된 창조 이야기는 공룡은 물론이고 현시대에 발견되고 탐구된 과학적, 고고학적 사실들을 담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을 근거로 고고학의 발견을 폄하하지 않으며, 고고학적 발견을 근거로 성경의 진리를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       따라서 우리가 창조론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창세기 1, 2장의 문장 그대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습과 인간 삶에 당신의 선의로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신을 믿는 우리 신자들은 인간으로서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삶과 세상의 원리를 관통하는 하느님의 계획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자, 이공계 종사자들은 창조 이야기를 통해 무질서해 보이는 세상의 원리와 인간 사회의 움직임에서 하느님의 선의와 섭리를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       2014 10 28일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내용의 일부를 들려드립니다. “빅뱅이론도 신성한 창조자로서 하느님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빅뱅은 사랑의 원리인 신의 계획에 따라 일어난 것.” “생명이 진화를 통해 발달했다는 생각이 가톨릭의 가르침과 충돌하지 않는다. 진화는 원천적으로 진화할 존재의 창조를 필요로 한다. 하느님은 생명을 창조했고 생명은 각자에게 부여한 규칙에 따라 발전 성숙해 사명을 완수하도록 했다”, “성경의 창세기를 읽다 보면 하느님을 마술봉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법사처럼 여길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각자에게 주신 규칙에 따라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셨다.”


4.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하느님께 사랑 받는데, ‘은 왜 있었나요?

-       성경의 본문은 성경 저자가 살던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당시 종은 주인과 계약을 맺고 고용된 사람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일정한 보수나 거주지를 제공받는 존재였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제도는 당연한 것이었고, 성경이 말하는 만인의 평등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실상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평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우리는 창조 이야기 안에서 모든 인간 개개인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인지하며, 그것이 인간 서로서로를 존중하는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압니다. 그 사랑의 체험이 우리 사회 안에서 평등에 대한 투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으로 그 시대의 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 옳지 않은 것임을, 교회가 말하는 평등의 사상에 어긋나는 것임을 압니다.

-       성경에서 탐구되고 드러나는 하느님의 선의와 진리는 인간의 사회와 역사 안에서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성경을 읽으며 그 안에서 탐구되는 하느님의 뜻과 진리를 우리 손으로 세상에 심어나갈 의무를 갖습니다. 성경 저자가 살던 당시에 종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인간 역사 가운데 그러한 제도가 철폐되었습니다. 예전에 신분제도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떠한 신분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인권 의식의 발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다시 살피고, 앞으로도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위해서, 하느님의 뜻이 다시 새롭게 세워지는 세상을 위해서 고민하고 투쟁합니다.


5.     유프라테스 강 등 실제 역사에 나오는 지명과 성서에 나오는 강 이름이 같은데 어떤 연관이 있나요?

-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가장 큰 강으로 당시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풍요의 상징으로 쓰인 지명입니다. 에덴 동산을 묘사할 때 그 풍요의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독자들에게 풍요로서 친숙한 실제 지명을 차용한 것입니다.


6.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섞자우리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삼위일체를 뜻하나요?

-       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복수 형태에 관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설명이 있습니다.

-       1. 존칭의 표현으로서의 복수명사. 단수 존재에 대한 복수 표현이 히브리어에서는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의 복수형인 엘로힘을 하느님을 부르는 말로 사용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       2.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천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       3. 삼위일체를 함의하는 표현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초기 교부들로부터 묵상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쓰이던 당시에는 저자가 삼위일체에 관해 몰랐을 것이기에, 설득력은 약한 편입니다.


7.     생명나무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함께 있는데, 왜 선악과를 먹으면 죽나요?

-       내용적으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은 하느님의 경고로 보입니다. 실제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서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께 거짓말을 한 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생명나무를 먹지 못함으로써 영생을 잃게 됩니다.

-       창세기 2장의 말씀은 노동을 통해 살며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삶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고대인 나름대로의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중 등장하는 열매라는 요소들은 실재라기보다는 당시 고대인이 생각하던 신적인 존재의 능력을 뜻합니다. 즉 생명나무는 영생을, 선악과는 분별력과 지혜를 상징하는데,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할 지혜를 지녔지만 결국 죽게 되는 운명에 대한 고민이 유태 신화 안에서 창세기의 이야기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       이러한 이야기 안에서 저자는 악에 굴복해 삶의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어떤 조건에서도 인간을 사랑하시며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다시 돌아갈 이상적인 공간인 에덴 동산을 그리며 인간의 운명과 신의 섭리를 설명합니다.


8.     3 16,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는 표현은 너무 남성우월주의적인 표현 아닌가요?

-       남성우월주의적인 표현이 맞습니다. 성경 저자는 시대적인 환경과 언어의 한계 안에서 성경을 저술하게 되므로 성경 본문은 그 한계를 고스란히 지니게 됩니다. 실제로 구약/신약에 남성우월주의적이고 여성차별적인 표현과 내용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것은 성경저자가 살아가던 시대의 가치나 규범이 이야기에 녹았기 때문입니다.

-       저자가 가지는 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지니는 성경 본문은 그 문장 그대로 사실이 아니며, 그 내용은 표면적인 뜻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시대에 비추어 새롭게 묵상되면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진리를 제시합니다. 고대인보다 더 진보된 인권의식을 가진 이 시대의 우리는 남성우월주의적인 표현이 담긴 성경 문장은 사실이 아니며, 성경에 남성우월주의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해서 그러한 사고방식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       해당 본문은 원죄 이후 노동과 출산이라는 고통의 굴레에 빠진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며, 아울러 그러한 운명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전해지는 하느님의 축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 저자는 동시대인이라면 쉽게 이해하고 동감할만한 예시로 삶의 비탄을 서술함으로써 인간 삶의 한계를 그리는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9.     창세기 3 15절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최초의 기쁜 소식인 원복음이라는데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이 구절 어디에서 구원을 찾아야 하는 건지, 어떤 구절 단어가 구원을 뜻하나요?

-       성경 본문에서 해당 구절은 이자 유혹하는 자 사탄을 상징하는 뱀에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악의 유혹과 끊임없이 대결하지만 결국 승리하는 인간의 모습을 하느님의 말씀을 빌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원복음을 통해 유혹하는 악인 뱀은 여자의 발뒤꿈치에 상처를 입힐 뿐이지만, 원죄를 지은 사람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된 여자의 후손은 악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끝내 악으로부터 승리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즉 이 구절이 함의하는 복음과 구원은 악의 유혹과 죽음으로부터 승리해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인간의 최종적인 운명입니다. 즉 원복음은 악으로부터 저지르지만 회개하고 승리하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       신약 이후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을 예고하는 본문으로 재해석 됩니다. 여자의 후손은 인간의 아들인 예수님을 뜻합니다. 수난과 부활을 통한 예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알고 있는 우리는 이 원복음에서 사탄이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님께 상처를 입히지만, 부활의 권능으로 사탄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시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  하느님께서는 왜 아벨을 더 예뻐하시고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셨나요? 하느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       하느님 선택의 기준은 알 수 없습니다. 아벨이 제물을 더 정성스럽게 준비했다거나, 카인은 맏물을 바치지 않았다거나, 유목민이었던 유대인이 곡물 농경(카인)에 비해 목축(아벨)의 뛰어남을 표현했다는 등의 이유가 추측되긴 합니다만, 성경 본문 상으로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만 아십니다. 하느님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신비이며, 인간은 그 기준을 알 수 없습니다.

-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신 이유가 아니라, 그 이후 카인의 반응입니다. 성경 저자는 하느님의 선택 이유와는 별개로, 이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경고를 무시하며 형제를 질투하고 미워하며 폭력을 저지르는 카인을 조명합니다.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는 주님의 가르침에도 카인은 죄를 저지르고 주님 앞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하느님은 카인에게 보호의 표를 찍으십니다. 성경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이웃의 잘됨을 질투하며 죄를 짓는 인간의 모습을 경고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11.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홍수를 통해 세상을 다 뒤집어 엎으셨나요? 노아의 홍수 때 다시는 파멸시키지 않겠다던 주님은 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나요?

-       노아의 홍수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등은 고대인이 생각하던 공의와 정의의 하느님을 그려냅니다. 인간의 잘못을 방관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잘못으로 인한 결과에 분노하시고 바른 길로 이끄시고자 경고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구약의 저자는 반복해서 드러냅니다. 이 내용은 아브라함 이전의 고대사에서 인류 공동체의 모습으로 드러나며(노아의 홍수, 바벨탑 등) 아브라함 이후의 성조사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가 성조 개인의 역사와 저자 시대의 민족이 병치되며 다시 그려집니다.

-       이처럼 잘못을 가만 두지 않으시고 약자를 돌보시며 정의를 위해 힘쓸 것을 촉구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방종이라는 단어와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사랑과 정의는 양면을 가진 하나의 동전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 모습을 성경 저자는 인류 공동체의 운명이나 민족 공동체의 운명을 묘사하며 드러냅니다. 이 묘사는 개인주의가 발생하지 않은 집단주의 시대의 저자가 택한 방법임을 염두하시기 바랍니다.

-       내용만 살피자면 사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느님의 약속은 인류의 멸절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사랑의 약속이며,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타락한 두 도시에 대한 하느님 정의의 심판이라는 점에서 색이 다릅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연속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의 역사 가운데 전승되어오던 설화들이 후세대의 편집자에 의해 짜인 것입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연속성을 가지지 않으며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담지만 한편으로 하느님의 섭리라는 맥락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12.  롯의 딸들 이야기나 열두 형제 간의 다툼 등 창세기의 비도덕적인 막장드라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성경은 그 이야기 자체로 도덕률을 정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경, 특히 창세기가 규범서라기보다 설화를 엮은 이야기책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인간의 다양한 군상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저술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버젓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       롯의 딸들의 이야기나 에사우와 야곱,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 유다와 타마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혈연관계를 중시하며 가부장을 중심으로 가문을 이뤄나가고 대를 잇는 것을 중요시했던 당시의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당시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며 지금 우리 시대에 비추어 교훈을 재해석합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여러 인간 군상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와 사랑을 묵상하며 현실의 우리 삶에서 그 묵상을 전개해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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